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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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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장 1절 ~ 13절[개역개정]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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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언급하시자 베드로는 마치 잘못한 사람을 꾸짖듯 예수님에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자신들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과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가기 편한 넓고 큰 길도 아니고 들어가기 수월한 큰 문도 아닙니다. 그 길은 가기 힘든 좁은 길이며,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문입니다(마 7:14). 심지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으려 하고, 가다가 중간에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육신의 생명을 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명 곧 영생은 잃고 말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해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것들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마 16:26)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히 9:27).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핍박을 받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마 16:25 ; 7:21 ; 요 5:29).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비록 이 땅에서 힘겨운 삶을 산다 해도 결코 신앙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마 24:13 ; 히 3:14). 이제 곧 심판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마 24:36) 머지않았습니다. 그날에 각 사람은 자신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거나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마 16:27 ; 롬 2:6).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크게 당황했고, 이에 동요하거나 불안해하는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증시켜 주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8). 그로부터 엿새 후(8일쯤, 눅 9:28)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눅 9:28)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이들 세 제자들만 데리고 동행을 하셨는데,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실 때도 세 사람만 데리고 가셨고(막 5:37),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러셨습니다(마 26:37). 왜 세 사람만 데리고 가셨는가에 대해서는 율법에 어떤 사건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다는 규정이 있는 것처럼(신 19:15) 변화산 사건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세 사람이면 충분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세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는 제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눅 9:29) 용모가 변화되어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두 사람 곧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메시아에 앞서 선구자와 예언자로 오리라는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유대 교사들 중에는 메시아가 오실 때에 모세가 함께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예수님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보다 중요한 의미는 그들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에 있습니다. 누가에 따르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예수님의 별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눅 9:31). 별세란 '세상을 떠난다'는 뜻으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는 '엑소도스(ἔξοδος)'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히 11:22).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것처럼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사(사 61:1 ; 갈 4:4, 5)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롬 3:25).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죄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롬 6:22).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깊이 잠들어 있던 있던 제자들은 잠에서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과 그분 곁에 선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눅 9:32).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막 9:6 ; 눅 9:33). 단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순간을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할 때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6:5). 후에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이 경험을 언급했습니다(벧후 1:17, 18).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면서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막 9:10). 그리고 왜 예수님께서 변화산 사건에 대해 함구하라고 하시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였던 서기관들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말 3:1 ; 4:5)을 근거로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주장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될 텐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리지 마라고 하셨을까요? 그래서 제자들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하셨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해서 함부로 대했고, 이와 같이 예수님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그동안 행하신 표적들은 그분이 메시아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요 6:15).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은 더 많은 표적을 원했습니다(마 12:38). 그들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면서도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표적을 구하며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대로 더 큰 표적을 보여주신다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행하신 기적들만으로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는데 더 큰 표적을 보여준다 한들 믿을 리 만무합니다.

제자들이 본 환상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말했더라도 그들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직접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환상을 봤다고 해서 믿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분노를 더 자극할 뿐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느냐는 문제로 다투고 있는데, 그들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고 기뻐하기보다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보다 더 예수님의 신임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았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화산 체험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로 동요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고백한 대로 예수님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시켜주는 사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면 세 제자들이 본 환상은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그 어떤 것보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확실한 표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20:28).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며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요 11:25)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부활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요 5:29).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롬 2:6).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 힘겨운 삶을 산다 해도 결코 믿음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그만 힘을 내십시오. 끝까지 견디십시오. 곧 예수님께서 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