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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십일조, 뭐가 문제야

2019. 5. 12.

한국교회에서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십일조. 어느새인가 십일조는 성서에도 없는 새벽기도회와 더불어 믿음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직분을 받을 수 없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믿음 없는 자로 낙인찍힌다.

 

새벽기도회는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새벽기도회. 새벽기도회는 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만드셨다고 한다. 정말일까? 성서에 보면 예수께서 새벽에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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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히브리어로 '마아세르(מַעֲשֵׂר)'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창 14장이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2)

아브라함은 엘람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얻은 것[전리품]에서 '십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십일조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아브라함은 왜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주었을까? 이에 대해 당시 지중해 연안과 중근동 지역의 관습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각주:1] 후에 제정된 규례에 의하면 전리품은 참전 군인들과 회중이 반으로 나눈 후 그 반에서 참전 군인들은 오백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주고 회중은 오십 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주었다(민 31:27-30). 여기에는 사람도 포함된다(민 31:47).

다음으로 십일조가 언급된 곳은 창세기 28장이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가는 도중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십일조 서원을 한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 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2)

야곱이 서원을 이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성서가 침묵하고 있다. 율법에 의하면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민 30:2) 그렇지 않을 경우 죄가 된다(신 23:21). 그래서 서원을 하고 지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다(전 5:5). 입다와 한나의 서원은 모두 지켜졌으며 성서는 그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삿 11:30-40 ; 삼상 1:11-28). 그런데 왜 야곱의 서원에 대한 이행 여부는 기록하지 않았을까. 설마 야곱이 십일조 서원을 이행하지 않아서 '험악한 세월'(창 47:9)을 보낸 것은 아니겠지. 

십일조가 율법으로 제정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레 27:30-32)

이스라엘 백성은 장차 가나안 땅에서 얻게 될 소산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는데 이는 레위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어졌다(민 18:21). 레위인들 역시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 가운데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으며 그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민 18:28 ; 느 10:39). 이 외에 감사의 축제를 위한 십일조와 구제를 위한 십일조가 있다.

 

십일조

십일조Tithe는 소출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그 기원은 아브라함Abraham이 전리품의 십분 일을 살렘Salem왕 멜기세덱Melchisedec에게 준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창 14:17-20). 이후 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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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십일조와 관련된 얘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규례가 잘 지켜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다윗이나 히스기야, 요시야 등 몇 왕의 재위 시절을 제외하고 율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는데 십일조 규례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참조. 말 3:7).

그렇다면 레위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까? 느헤미야서에 보면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십일조]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느 13:10). 생계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 지역에 흩어져 살았고 남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성전에서 혹은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각자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대상 23:3-5). 레위인들에게는 백성들이 주는 십일조가 유일한 수입원이었기에 그것이 끊기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참조. 삿 17:7, 8).

이러한 상황은 말라기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백성들이 십일조를 가져오지 않아 성전 창고는 늘 비워 있었고 그로 인해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말 3:8, 9). 이러한 책임은 전적으로 제사장들에게 있었는데 그들이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말 2:7-9). 모범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율법을 무시했으니 백성들이야 오죽하였으랴(말 1:6-14). 

하지만 기회는 있다! 지금이라도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기만 하면 저주를 복으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각주:2]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이스라엘 백성은 땅의 모든 소산물과 가축의 십일조를 드려야 했다(신 14:22 ; 레 27:32).[각주:3] 이는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에(레 27:30, 32) 그것을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도둑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말 3:8).[각주:4] 헌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좋은 짐승을 바치겠다고 서원했음에도 막상 드릴 때는 흠이 있는 것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망하는 행위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말 1:13, 14).

이 말씀을 끝으로 구약에서는 더 이상 십일조에 관한 언급이 없다. 물론 십일조 규례는 성전이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렇다면 성전 제사가 폐지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예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박하와 회향과 근채, 운향(눅 11:42)은 조미료나 향료로 사용되는 채소로 십일조의 범주에 넣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었는데(눅 11:42) 이는 모세의 율법보다는 장로들의 전통[미쉬나(Mishnah)]에 따른 것이다.[각주:5]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았으면 좋았으련만 바리새인들은 저것보다 더 중요한 이것,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 그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율법의 형식을 더 중요시 여기는 자들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다(마 23:27, 28). 

Picture by James Tissot (From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그리고 이 말씀[마 23:23] 역시 한시적으로 유효한 것이었다. 성전 제사가 폐지되기 전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전과 그에 관한 규례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으며(요 2:21 ; 히 7:27 ; 9:12 etc.)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임무와 역할은 끝났다(히 10:8, 9). 더 이상 성전도 제사도 제사장들도 필요 없게 된 것이다(히 8:5). 그렇다면 십일조도 마땅히 폐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교회 운영을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교인들의 헌금으로 충당된다. 초대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대교회의 재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나눔'이라 할 수 있겠다. 재산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팔아 교회에 내놓았고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행 2:45 ; 4:34, 35). 사역자들의 생계비로 지원되기도 했는데(고전 9:4, 5) 바울처럼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는 사역자들도 있었다(행 20:34 ; 고전 4:12 ; 9:12 ; 살전 2:9).[각주:6] 예수께서도 나눔을 강조하신 바 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눅 18:22)

'나눔'은 십일조의 정신이기도 하다. 기업이 있는 지파들이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에게 십분의 일을, 또 다른 십분의 일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었다. 비록 십일조가 폐지되었다 할지라도 이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필자는 여전히(?) 십일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십일조를 복과 연결시켜 설교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믿음대로 하면 될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롬 14:5)

십일조에 관해서는 아래의 책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 조성기,「십일조는 없다」, 서울: 평단문화사, 2013 ; 윤상원,「십일조가 알고 싶다」, 경기: (주)넥서스, 2018.

  1. 조성기,「십일조는 없다」(서울: 평단문화사, 2013), p. 33. [본문으로]
  2. 온전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콜(כֹּל)은 모든(all) 혹은 전체(whole)를 의미한다.「스트롱코드 원어사전」참조. [본문으로]
  3. 땅의 소산물이 아닌 것과 가축이 아닌 것은 십일조에 해당되지 않았으며 돈으로 대신드릴 수도 없었다(신 14:22-27). [본문으로]
  4. 혹자는 말 3:10의 대상이 일반 백성들이 아닌 제사장들이라고 본다.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말고 그것을 모두 창고에 들이라고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조성기, p. 100. [본문으로]
  5. 안용수,「십자가에 못 박힌 십일조」(서울: 도서출판 책평화, 2016), p. 181 ; 조성기, p 159. [본문으로]
  6. 가끔은 바울도 후원금을 받았다(고후 11:8, 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