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ἐν/신앙칼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우리나라 교인들처럼 신앙생활에 열심인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각종 예배와 모임 등 거의 매일 교회에 모이다시피 하고 십일조를 비롯해 수많은 종류의 헌금을 하며 전도와 봉사에 힘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열심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각주:1] 외출을 삼갔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동거리에 제한을 두었습니다(행 1:12). 심지어 죽을병이 아니면 병자를 치료하는 행위도 금지되었습니다(눅 13:14).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하루 세 번 기도하고(행 2:15 ; 3:1 ; 10:9), 일주일에 두 번이나 금식했습니다(눅 18:12). 십일조 역시 철저했는데, 박하와 회향과 근채 등 곡식이 아닌 채소의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마 23:23). 또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닐 정도로 전도에 열심이었습니다(마 23:15).

이러한 종교적 열심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도 완벽에 가까웠습니다(눅 18:11). 외형적으로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만 말입니다(마 23:28).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겼으니(눅 18:9) 얼마나 같잖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외식하는 자[위선자]'(마 15:7 ;  22:18 etc.)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3:27).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5:20).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들보다 더 철저히 율법을 지키라는 것일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준수에 엄격했으며 그러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더 중요한 부분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해 버렸습니다(마 23: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 '의'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이죠(출 20:14 ; 신 5:18).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마 5:27). 율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대해서만 정죄를 했지만 예수님은 행위의 근원인 마음까지 죄로 간주하셨습니다. 

또 율법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규례가 있는데(출 21:24, 25 ; 레 24:20)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5:39-42).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외적인 행위에만 신경을 썼으나 그리스도인들은 내적인 경건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각주: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한 마디로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도 하죠(롬 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3:37-4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9)

사실 사랑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면서도 제일 지켜지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문제로 분쟁과 갈등을 겪고 있던 고린도교회[각주:3]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 해결책으로 사랑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1-7)

요즘 교회에서 일어나는 혹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전 1:9)는 전도서 기자의 말이 실감납니다. 바울 당시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날 교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으니 말이죠.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고소 · 고발이 난무하며 당파 싸움에 교회가 갈라지고... 그러면서도 사랑을 외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열심보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 곧 사랑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이나 왜곡된 사랑이 아닌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말입니다(요일 3:1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6-8)

  1. 할례(요 7:22)처럼 예외 규정이 있기는 합니다. [본문으로]
  2. 「미션 디럭스 바이블 2005 : 메튜헨리 주석 : 마태복음 5장」. 경기: (주)미션소프트, 2005. [본문으로]
  3. 'ποιμέν칼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