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ἐν/성경이야기

성경의 비유 : 선한 사마리아인

yeum 2021. 7.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0-36)

사마리아 사람들은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BC 772년) 그곳에 이주해 온 이방인과 남아있던 유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입니다(왕하 17:24-40).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이방인과 똑같이 취급하거나 이방인보다 더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상종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예루살렘 성전의 출입도 금지시켰습니다.

사마리아, 사마리아인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했고(왕상 11:43),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에브라임 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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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느 유대인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인종적 편견이 없으셨습니다. 유대인이든 사마리아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님에게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요 11:52).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셨고 또 힐렐(Hillel)이나 샴마이(Schammai)처럼 유명한 스승의 문하에서 배우지도 않으셨지만(요 7:15) 가르침에 있어서는 어느 선생[랍비]보다 탁월하셨습니다(마 7:28 ; 막 11:18 ; 눅 4:22 ; 요 7:46). 율법교사는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율법의 선생(마 23:2)으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예수님이 자신의 질문에 과연 율법적으로 올바른 답변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요량이었던 같습니다(에매트신학주해 外). 만일 율법에 어긋난 답변을 하면 그것을 빌미로 예수님을 힐난할 작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교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 스스로 자신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신 6:5)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레 19:18) 하였나이다." 그는 율법의 전문가답게 옳은 대답을 했습니다(눅 10:28).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눅 11:46). 율법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서기관,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마 23:3). 따라서 율법교사는 "이를 행하면 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뜨끔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느낌이라 할까요(시 7:15). 그래도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웃이란 동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은 이웃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웃이 아니라 원수였습니다(마 5:43[각주:1]). 이에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를 들어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중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분명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강도들은 이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은 채로 버려두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을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길 반대편으로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어떤 레위인도 그곳에 와서 그 사람을 보고는 역시 길 반대편으로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지도자들로 어느 누구보다 율법의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더욱이 강도를 만난 사람은 자신들이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동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을 외면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 변명거리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 길을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같은 민족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멸시를 당해야만 했던 사마리아 사람. 하지만 이 사마리아 사람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불쌍하게 여겨 치료해 주었고 자기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껏 보살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각주:2], 사마리아인은 두 데라니온[각주:3]을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이 어떤 이유로 여행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새벽에 일찍 떠나야 할 만큼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이 비유에서는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The Good Samaritan, Jacob Jordaen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면서 율법교사에게 물었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마리아 사람이지요. 그런데,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을 언급하지 않고 단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말합니다. 율법교사는 아직도 자기 동족 외에는 이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습니다.[각주: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동족이든 아니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웃이라는 거지요.

이웃이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고 있고 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도와줄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서도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가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사실 그런 일들이 종종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법이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마 5:16)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곧 자신에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하지만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감으로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칭찬받을 일이 못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마 6:1).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선행은 드러내지 않게 하는 것 즉 나팔을 불지 않는 것입니다(마 6:2).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홍보할 필요도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자신을 선대하는 사람에게만 도움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4-48)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롬 12:20).

  1.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율법사들에 의해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으로 보입니다(헤세드·레마주석). [본문으로]
  2. 시리아 시나이사본(Syriac Sinaiticus)에는 '그날 새벽에'로 되어 있습니다(A. T. Robertson, 신약원어해설). [본문으로]
  3. 데나리온(δηνάριον)은 은화의 명칭으로 일반 노동자의 하루 임금입니다. [본문으로]
  4. 렌스키(R. C. H. Lenski)는 이 대답이 '사마리아인'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렌스키주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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